[일분 소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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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싫어해요."
 "그런데 왜 계속 마시나요?"

 나는 손에 든 스티로폼 컵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커피를 세 시간 가까이 홀짝이고 있었다.

 "사실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시럽이나 설탕이 들어가면 더 견딜 수 없어요."
 "그런데 왜? 언제나?"

 나는 느릿하게 발음했다.
 "아마, 내가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억양은 없었다.
 "맞아요.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내게 하고 싶었어요, 언제나, 늘."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단골 카페에서 얼마 전까지 알바생으로 일했다. 오늘 낯설고 더러운 서해바다가 보이는 거리에서 우리는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난 힘든 일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답례로 내가 말한 것은, 조금 뜬금없게도, 아메리카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눈에서 손을 내리자, 그녀는 바스락거리며 작은 노트를 내밀었다.
 "아, 이거, 오늘 예뻐서 샀는데, 드릴게요."


헤어져 돌아오는 길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그녀가 준 노트가 비에 젖을까 걱정되어 겉옷 안에 감싸고 걸었다.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지 알 수 없다. 오늘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은 식어버린 아메리카노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고, 그녀가 내게 준 것은 작은 노트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아주 많은 것을 말한 것처럼, 그녀는 내게 많은 것을 건네 준 것처럼 느껴진다. 퍼붓는 빗 속에서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방에 들어가 물기를 닦아내고 오늘을 적을 수 있도록.


by 타륜 | 2009/09/11 03:06 | 1분 소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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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玄月 at 2009/09/12 03:53
으악.
Commented by 시프 at 2009/09/12 11:36
그젯밤에도 이런 생각 하면서 잠들었어요. 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두고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있는 걸까, 이렇게 방만하고 어리석을까 하고요. 그러니까 글을 써야 해요. 그리고 또 다른 것들도.
Commented by 마리 at 2009/09/17 21:07
아아아아아 ㅜㅜ
정말 써주셨군요. 오랫동안 안올라와서 버림받은 줄 알았습니다.ㅜㅜ
(제가 마리스에요;)

키워드 둘 중 이쪽이 참 마음에 드네요.
이런 것이 나올줄 상상도 못했는데, 뻔해보이는 사탕을 입에 물었는데 전혀 의외의 맛이 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타륜님 아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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